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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카이퍼

아브라함 카이퍼의 일생과 그 업적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를 유서 깊은 나라 네덜란드로 인도한다. 네덜란드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나라였다. 그곳은 카이퍼가 출생한 1837년부터 사망한 1920년까지 그의 길고도 역동적인 삶의 현장이었다. 그리고 네덜란드 전체가 그의 무덤이라 할 만큼 네덜란드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모든 것을 말해 주는 곳이다. 느헤미야 4장 18절에 보면 “건축하는 자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는 구절이 있는데, 카이퍼는 그러한 삶을 살았다. 종교와 교회, 교육과 대학 그리고 정치와 정부의 중요한 건축가로서 그는 모든 면에서 개척을 위한 투쟁을 벌여야만 했다. 사실상 카이퍼 박사는 논쟁의 대상이었다. 그는 생전에 네덜란드에서 가장 헌신적인 사..
아브라함 카이퍼의 일생과 그 업적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를 유서 깊은 나라 네덜란드로 인도한다. 네덜란드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나라였다. 그곳은 카이퍼가 출생한 1837년부터 사망한 1920년까지 그의 길고도 역동적인 삶의 현장이었다. 그리고 네덜란드 전체가 그의 무덤이라 할 만큼 네덜란드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모든 것을 말해 주는 곳이다.

느헤미야 4장 18절에 보면 “건축하는 자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는 구절이 있는데, 카이퍼는 그러한 삶을 살았다. 종교와 교회, 교육과 대학 그리고 정치와 정부의 중요한 건축가로서 그는 모든 면에서 개척을 위한 투쟁을 벌여야만 했다.
사실상 카이퍼 박사는 논쟁의 대상이었다. 그는 생전에 네덜란드에서 가장 헌신적인 사랑을 받는 동시에 극심한 혐오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50년간의 다대한 노력과 격심한 투쟁 끝에 전 국민의 존경을 받는 위인으로 추대되었다.
카이퍼 박사의 광활한 인생 행로는 근대 네덜란드 역사에 한 편의 대하소설을 만들어냈다. 더욱이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의 업적이 계속해서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이다.

카이퍼 박사가 1920년에 83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자 함께 일해오던 유능한 동료들과 후배들은 그의 평생의 일을 끊임없이 추진해왔다. 카이퍼의 정신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네덜란드 도시와 들판에 머물러 있다.

이 전기의 목적은 독자들에게 아브라함 카이퍼 박사를 소개하는 것이다. 따라서 각 장들은 사실적이면서도 해석적인 시각으로 카이퍼의 삶을 보여주도록 의도되었다.


2012년 7월 30일
한국기독교정치연구소


Willliam. Eerdmands (1880-1996)

섬유제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윌리엄 B.에드먼스는 1902년 미국으로 건너 갔다. 그는 미국 칼빈 신학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생계를 위해 네덜란드계 미국인들에게 책을 팔기 시작했다. 신학보다 판매에 더 소질 있음을 알게된 에드먼스는 학교를 중퇴하고 본격적인 책 판매에 뛰어 들었다. 본인 이름을 딴 ‘윌리엄B. 에드먼스 출판사(William B. Eerdmands Publishing Company)' 를 설립하여 유럽 신학자들의 서적을 네덜란드어로 출판하였고, 설립초기 출판물 대부분이 존 칼빈의 서적들이었다. 1940년부터 1960년 까지는 C.S. 루이스, 칼 바르트, 리처드 존노이하우스. 니콜라스 월터스톨프, 마틴 마티 등의 서적을 ,출판하여 명성을 쌓았다. 현재는 그의 아들 윌리엄 B. 에드먼스 주니어가 출판사를 운영중이며 여전히 성서, 신학적도서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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