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한(東漢)의 유덕승(劉德昇)이 창시하였다고 하고, 진(晉)나라의 위항(闈恒)은 위초(魏初)의 종요(鍾繇)와 호소(胡昭)가 유덕승에게 배워 행서법(行書法)을 썼다고 하였다. 종유 삼체(三體) 중의 하나가 행압서(行押書), 곧 행서이며, 왕희지(王羲之)·왕헌지(王獻之) 부자에게 이르러 완성되었다.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은 353년에 왕희지가 쓴 〈난정서 蘭亭序〉인데 이것은 당대의 필사본이다.
행서는 두 가지로 나누어져, 청나라의 유희재(劉熙載)는 “행서에 진행(眞行)과 초행(草行)이 있는데, 진행은 진에 가깝되 흘린 것이고, 초행은 초에 가까우나 덜 흘린 것”이라 하였다.
행서는 해서와 같이 섞어 쓰기도 하고, 초서와 함께 쓰기도 하는데, 때에 따라서는 해·행·초 3체를 혼합해 쓰기도 하여 그 조화와 변화를 적절히 구사하면 서법으로서 가장 뛰어난 작품을 이룰 수 있다. 따라서, 역대의 서가(書家)들은 행서에 치중하여 힘쓰고, 더욱 주의한다.
이후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서체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 소장(所藏) : 권 의용 .
(전) 인천 세일 고등학교 교사 재직 .
(전) 서울공연 예술고등학교 교사 재직 .
원본 판매 추정가 : 100만원 ~ 200만원